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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vs 삼국지연의

by 나중된자 2008. 8. 8.

@삼국지(三國志)

@삼국지(三國志)는 진나라 때 진수가 정리한 후한(後漢) 이후의 위, 촉, 오(魏, 蜀, 吳) 삼국시대에 대한 역사서이다. 진수의 삼국지는 기전체로 되어 있다. 기전체는 본기(本紀), 지(志), 연표(年表), 열전(列傳)으로 구분되어 항목별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고려사나 삼국사기 등이 기전체로 서술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본기는 제왕에 대한 기록이고, 열전은 기타 인물에 대한 기록이다. 지는 주로 제도에 관한 기록이다. 삼국지는 본기와 열전만 있다.


중국의 역사기록은 기전체 이외에도 편년체(編年體),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강목체(綱目體)등이 있다. 편년체는 말 그대로 연대기순으로 역사를 정리한 것으로 주희의 자치통감이 그 기원이다.
기사본말체는 사건의 원인, 경과 및 그 전말을 기록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연려실기술이 기사본말체
이다. 강목체는 주희의 자치통감강목을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는데, 큰 줄기(綱)와 작은 내용(目)으로 나누어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이다.


기전체로 쓰여진 삼국지는 총 65권으로 되어있다. 즉,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이다.
위서는 본기와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기에는 네 편이 있고, 전에는 25편이 있고, 그 끝에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이 있다.
촉서와 오서는 전만 있다.


위서에는 30권에 총 136명의 인물에 관한 기록이 들어 있고, 촉서에는 68명, 그리고 오서에는 93명에 관한 기록이 들어 있다. 즉, 삼국지에서 기술한 주요인물은 총 297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위서의 무문세왕공전은 무제(조조)와 문제(조비)의 아들에 관한 것으로 본기와 열전에서 다루지 않은 조조의 아들 25명 중 21명과 조비의 아들 9명 중 8명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어 이들을 모두 포함시키면 인원은 늘어날 수도 있다.


삼국지의 각 권은 인물 1명만을 다룬 것과 여러 인물을 다룬 것으로 구분된다.
위서는 본기 중 3권(무제기, 문제기, 명제기)은 1명씩 다루고 있다.
촉서는 3권이 한 인물에 관한 것인데, 선주전(유비), 후주전(유선), 제갈량전 등이다.
오서는 오주전(손권)과 육손전만 한 인물을 다루고 있다.

삼국지에는 본기와 열전의 한 항목을 차지하는 인물 이외에도 많은 인물이 특정 사건에 관한 기록에서 등장한다. 예를 들어 무제기의 주인공인 조조는 다른 사람을 다룬 열전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무제기에도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삼국지연의는 소설이지만 흔히 삼국지로도 불리기 때문에 역사서인 삼국지와 소설인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인물에 관한 기록이 서로 합치하는 지를 비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일부에서는 삼국지와 삼국지연의의 차이점을 지적하면서 삼국지연의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기도 한다(손경숙, 김진철 역, 삼국지 고증학, 1997).
그렇지만 삼국지연의는 소설이기 때문에 역사서인 삼국지와 모든 것이 같을 필요는 없다.
일반독자들이 읽은 것은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지연의이기 때문에 조조나 유비의 이미지는 삼국지보다 삼국지연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리더의 대표적 유형의 하나로 논의되는 조조나 유비 등은 삼국지연의에 의해 재창조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삼국지가 기전체의 역사로서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면 삼국지연의는 '시대 순으로' 그리고 '사건 중심으로' 엮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가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었지만 인물의 이미지를 유형화하는데 성공적이지 못한 반면, 삼국지연의는 시대의 흐름과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였지만 등장인물을 유형화하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삼국지연의가 있음으로 해서 조조, 유비, 손권등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 현재도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진수가 정리한 삼국지는 위, 촉, 오 세나라 중에서 후한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은 위나라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 진수가 위에 정통성을 부여한 근거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위서를 가장 먼저 두고, 양에서도 절반을 차지하도록 하였다.
둘째는 위서에 황제에 관한 기록인 기(紀)를 두었다. 촉과 오의 황제에 대한 기록은 전으로 분류하였다.
셋째는 황제에 대한 호칭에서 위의 황제만 제(帝)로 하고, 촉과 오의 황제는 주(主)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는 한나라를 지키거나 계승하려한 촉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위나라를 세운 조조를 간웅으로 보고 있다.


위와 촉 중에서 어느 나라를 정통성 있는 국가로 보느냐가 중요한 것은 정통성이 있는 국가가
정의가 되고, 나머지는 반란을 일으키거나 국가에 대항하여 혼란을 초래한 집단이 되기 때문이다.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해당 인물의 이미지가 달라 질 가능성이 있다.